그러므로…… 그러므로 이제 기억뿐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억. 가지고 있다고 믿는 기억.

  그러나 이것들은 다 없어진다. 나와 더불어서. 나의 죽음과 더불어 조만간, 아마도 곧…… 아무도 실리를 모르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고 실리는 영원히 잠길 것이다. 망각으로.

  실리는 마침내 죽는 것이다.


/ 황정은, <아무도 아닌> 명실 中



“이번 소설집의 제목은 수록작 ‘명실’에서 가져왔어요. ‘아무도 아닌, 명실’에서 앞부분만을 옮긴 것이죠. 사람들이 ‘아무도 아닌’을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더라고요. 이 일이 저에게 뭔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끔 했어요. 그래서 ‘명실’ 이후에는 ‘아무도 아닌’이라는 제목에 묶일 수 있는 소설을 썼고요. 이번 소설집 수록작 중에서 제일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명실’이에요. 이유는 음, 그냥 좋아요.(웃음) 쓰면서 굉장히 즐거웠거든요. 반면 ‘명실’ 이후의 소설들은 심정적으로 좀 어두운 상태에서 썼어요. 저를 압도하는 화자도 있었고요. 이를테면 ‘복경’의 화자가 그랬죠. 소설을 쓰는 내내 제게 얼굴을 바짝 내밀고 압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듯했거든요. 쓰면서 많이 무서웠을 정도로요. 예전에는 소설 속 화자가 꿈에 등장할 때도 있었어요. 전작 <야만적인 앨리스씨>에 등장하는 화자 ‘애자’가 그랬죠. 꿈에서 어떤 여자가 대단히 난폭하고 강렬하게 이야기를 쏟아붓는데 ‘애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잠에서 깨자마자 꿈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었고, 소설 속에서는 복숭아 술로 유명한 마을에 관한 이야기로 삽입됐어요.”


소설가 황정은이 말하는 ‘아무도 아닌’ 이들의 오늘


(백업)